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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문 · 723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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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 옥 현은 1781년 세 환의 아들로 태안읍에서 태어났습니다.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여 마을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였습니다. 옥 현의 나이 16세 때 그의 아버지가 살인 누명으로서 산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. 서산에 나가 아버지를 돌보며 잠시도 그 옆을 떠나지 않고 관헌에게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니 옥 리도 그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였다고 합니다. 다시 관찰사에게 호소하였으나 여의치 않아, 서울로 올라가 금 호 문 밖에서 대신들이 출입할 때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.
그리고 하루는 상감의 행차가 있다는 말을 듣고 혜 정 교 밑에서 엎드렸다가 엄동인데 위 옷을 벗고 쇠를 두들기며 큰 소리를 내게하였습니다. 이를 안 상감께서 그 효성에 탄복하시고 감동하여 그의 아버지를 사형에서 감형시켜 삼 년간 함경북도 경성으로 유배시켰습니다.
그 뒤 1800년 그의 아버지 죄는 사면되었으나 옥 현은 누적된 고초와 피로로 병을 얻게 되었고, 극도로 쇠약해져 1800년 4월 4일 아버지의 유배지인 경성에서 가엾게도 죽고 말았습니다.
이와 같은 효성이 지극한 아들을 수천 리 타향 함경북도 경성에서 잃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하였겠습니까! 그의 아버지는 아들 옥 현의 시체를 서산군 부석면 가사리에 운구하여 장사를 지냈습니다. 이러한 효성에 감동하여 1808년 태안읍 동문리 에그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는 효자 정문을 세웠으니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.